하완 저자 소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열심히 사는데 내 삶은 왜 이 모양인가.' 억울한 마음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대책도 없이 회사를 드만두고 프리랜서가 됐지만 그림 의뢰도 거의 없고 결정적으로 그림 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놀고먹는 게 주된 일이 됐다. 이제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되어 더욱더 게으르게 살다 보니 열심히 살지 않는데 도가 텄다.
특기로는 들어오는 일 거절하기, 모아놓은 돈 까먹기, 한낮에 맥주 마시기 등이 있다.
다수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쓰고 그린 그림책도 한 권 있지만 굳이 밝히지 않겠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소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은 현대인들이 겪는 삶의 압박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 하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열심히 살기'라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열심히 사는 것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열심히 살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는 우리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압박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인상깊은 구절들
괴테가 그랬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이라고.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둥둥!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신교육을 받는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돼."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노력하지 않고 얻은 성공은 비겁한 거야." 이런 교육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신앙처럼 품고 살아간다. 이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세상을 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아니, 살면 살수록 아니라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고나 할까? 그래서 혼란스러운 거다. 우리의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인생은 수수께끼, 정답지가 있거나 답을 알려줄 사람이 있다면 한결 수월할 텐데, 그런 건 없다. 오로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줄 사람도 없다. 응? 도대체 무슨 문제가 이 따위야? 누군가는 답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게 답인가 싶다가도 이내 '이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든다. 정말 정답이란 게 있다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인생을 끌어안고 절절매지는 않았을 거다. 정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가끔은 인생에 묻고 싶어진다.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문제들을 던져주냐고, 풀어도 풀어도 끝도 없고, 답도 없다. 이쯤 되니 인생이 하나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정답 없는 수수께끼 같은 농담 말이다. 농담을 걸어온다면 농담으로 받아쳐주자.
내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현실은 궁상맞지만 과거처럼 비관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 이건 '답'이 아니라 '리액션' 이 중요한 시험이니까. 내 리액션은 괜찮은 걸까?
달콤함만으론 살 수 없다는 걸, 자유가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달콤했던 자유는 순식간에 맛이 변하고 만다. 불쾌한 불안의 맛. 그 맛이 느껴지면 뇌에선 괜히 퇴사했다는 후회가 마구 분비된다. 달콤함은 끝났다. 아아, 고작 이 짧은 달콤함을 즐기려 퇴사했던가. 이제 나는 회사의 노예가 아닌 불안의 노예다.
한 달을 잘 버티면 돈을 받던 회사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바깥세상에선 어떻게 돈을 벌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선 버틴다고 돈을 주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노예 생활에 길들여졌다. 아아, 망했다. 이토록 불안한 자유라니, 나 자유인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자유로운 시간이 많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 비용이 든다. 내가 자유를 팔아 모아뒀던 돈을 고스란히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욕망을 부추긴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는 문장이었다. 사실 나는 리조트에 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해야 할 의무로만 가득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원하는 걸 모르고 헛된 것들로 허기를 채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이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뭔가 충만한 기분이 든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기분, 낭비가 아니라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은 뇌의 95퍼센트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작 5퍼센트의 뇌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다.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좀 덜 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하면 좋겠다. 그것이 방전되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나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욕심도 버리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내 집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다.
낮술은 묘한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한다. 예전 같으면 사무실에 갇혀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니 행복하다. 그래서 맥주를 파는 카페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산책이란 우아한 헛걸음이다. - 만화 <우연한 산보> 중에서
우연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목적 없는 헛걸음. 이런 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재미가 아닐까?
여행을 떠나기 전 챙겨야 하는 준비물은 계획표가 아니라 '태평함' 이 아닐까? 비즈니스도 아니고 놀러 가는 건데 태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데이트도, 산책도, 여행도, 가능하면 인생도.
목적 없이 우아한 헛걸음으로...
즐거움은 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한가지 분명한 건, 영원히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 퇴사를 한다. 나는 좀 빨리 그만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볍다.
오랫동안 "일하기 싫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냥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돈 때문에 일이 싫어진 거였다. 솔직히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만약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상황이 와도 일은 하고 싶다. 돈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마음 편하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면서.
이제야 알았다. 나는 일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싫은 거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적어도 남 탓할 선택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적어도 남을 탓할 일은 없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다 내 책임이다. 그러면 인생이 좀 덜 억울하다. 내 인생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꿈을 꾸는 건 짝사랑과 같다. 그 사람과 연인이 될 가능성을 따져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어서 짝사랑을 하는 거다. 날 받아줄지 거부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꿈을 꾼다.
돈 때문에 자유를 계속 미루기만 하다간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한 채 늙어 죽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덮쳐왔다. 이봐.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전에는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돈을 벌었다. 내게 돈을 번다는 건, 곧 무언가를 참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의 자유로움과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번다. 참는 것이 아닌 기쁨을 좀 더 맛보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다. 많이 벌 필요도 없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정도만 벌면 된다. 검소하게 살면 더 게으르게 살 수 있다.
현재의 자유를 위해 돈을 번다.
어쩌면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정상이다.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는 지금이 정상이다. 괴로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뭐야, 괜히 속상했잖아, 흥.
인생은 대부분이 시시하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삶이란 인생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런 시시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마무리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란 순응하면 등에 업혀가고 반항하면 질질 끌려간다." 이건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똑같은 길을 가도 누군가는 편안하게 가고 누군가는 끌려간다. 즉, 같은 인생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가르침이다.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가난한 사람은 결핍의 고통을 느끼고, 부유한 사람은 권태에 시달린다. 모든 것은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다. 앞으로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가 아닌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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